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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오용섭 교수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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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Date>Fri, 22 May 2026 06:10:03 GMT</pubDate>
<dc:date>2026-05-22T06:10:03Z</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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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해인사 대장경판 기록화 사업 앞두고 세미나 열려</title>
<link>http://117.16.248.84:8080/xmlui/handle/123456789/1011</link>
<description>해인사 대장경판 기록화 사업 앞두고 세미나 열려
오, 용섭
sync-오용섭 / 인천대학교 문헌정보학과 교수&#13;
(이 기록을 통해서 우리는 많은 것을 알 수 있는데 ‘고려판대장경인쇄전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처음 오다 간지로가 대장경 인쇄의 명을 받자 바로 타카하시고이치라 하는 사람에게 대장경 판목을 조성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인경하기 전의 일입니다.)&#13;
&#13;
sync-오용섭 / 인천대학교 문헌정보학과 교수&#13;
(판각당시에 한자의 오자라도 있다면 매목을 통해서 수정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당시 승려학자들이 한 자라도 놓치지 않으려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국보 32호이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이 대규모 기록화 사업을 앞두고 있는데요, 장기간 불사에 대비해 올바른 기록화를 위한 분야별 과제를 토대로 세미나가 열렸습니다. 보도에 이동근 기잡니다.&#13;
------------------------------&#13;
한국불교의 자랑스러운 성보이자 세계 속의 인쇄문화를 대표하는 해인사 대장경판. &#13;
&#13;
불교문화재연구소가 법보종찰 해인사, 문화재청과 공동으로 대장경판 정밀․과학적 기록화를 위한 분야별 과제를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했습니다.&#13;
&#13;
세 기관은 첨단장비와 새로운 기술을 적용해 장기간에 걸쳐 대장경판의 과학적 기록화 사업을 앞두고 있습니다.&#13;
&#13;
발표를 맡은 오용섭 교수는 성보 관련 과거 기록과 함께 불사에 대비한 제반사항을 제시했습니다.&#13;
&#13;
대장경판 조사와 인경 중 1915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제작된 ‘고려판대장경인쇄전말’을 소개하며 인경한 3부 중 1부는 비단표지 절본이고 2부는 종이표지 철본이라고 밝혔습니다.&#13;
&#13;
또, 철본용 인쇄용지는 해인사 부근 실업전습소에&#13;
위탁해 33만여 장을 제작했고 모든 종이는 조선산 저피를 사용해 만들어진 사실이 기록돼 있다고 말했습니다.&#13;
&#13;
sync-오용섭 / 인천대학교 문헌정보학과 교수&#13;
(이 기록을 통해서 우리는 많은 것을 알 수 있는데 ‘고려판대장경인쇄전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처음 오다 간지로가 대장경 인쇄의 명을 받자 바로 타카하시고이치라 하는 사람에게 대장경 판목을 조성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인경하기 전의 일입니다.)&#13;
&#13;
기록화 사업의 고려사항도 언급했습니다.&#13;
&#13;
판각을 새로 새긴 ‘매목’ 중 ‘분사대장도감’ 부분에만 관심을 가졌지만 과학화 사업에서는 다양한 매목 사례들을 조사해 새로운 정보를 얻어야 한다는 것입니다.&#13;
&#13;
더불어 대장경판에 사용된 목재가 산벚나무와 돌배나무 등으로 분석됐지만 의문이 제기된다며 다양한 방법으로 목재 성분을 확인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13;
&#13;
sync-오용섭 / 인천대학교 문헌정보학과 교수&#13;
(판각당시에 한자의 오자라도 있다면 매목을 통해서 수정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당시 승려학자들이 한 자라도 놓치지 않으려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13;
&#13;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효율적인 관리와 보존 노력이 절실한 해인사 대장경판.&#13;
&#13;
세미나는 장기간 기록화 사업을 대비해 과정과 절차를 점검하는 시간이 됐습니다.  &#13;
&#13;
BTN 뉴스 이동근입니다.
</description>
<pubDate>Sat, 15 Dec 2018 00:00:00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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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date>2018-12-15T00:00:00Z</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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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어서오시겨 강화]'5000만 자의 하이테크' 낳은 인쇄술 성지</title>
<link>http://117.16.248.84:8080/xmlui/handle/123456789/1008</link>
<description>[어서오시겨 강화]'5000만 자의 하이테크' 낳은 인쇄술 성지
오, 용섭
당시 오용섭 인천대학교 문헌정보학과 교수는 &lt;동문선&gt;(東文選)과 중국 &lt;사고전서&gt;(四庫全書)에서 팔만대장경 판각과 보관의 총 본산이 강화도라는 사실을 찾아냈다. 진주 용봉산 영암사를 중창한 뒤 누락된 대장경을 보충하기 위해 강화도에 있는 대장경으로 보충했다, 팔만대장경 인본을 강화 삼산면 석모도 보문사에 보관했다는 &lt;동문선&gt; '영봉산 용암사 중창기'와 &lt;사고전서&gt;의 '고려국대장이안기'의 내용을 보여줬다. 오 교수가 밝혀낸 사료들은 팔만대장경이 강화도를 중심으로 만들어지고, 보관했었다는 피하지 못 할 증거였다.
꽃잎들이 흩날렸다. 오백나한상 위로, 커다란 와불이 누워있는 법당의 지붕 위로도 함박눈송이 같은 꽃눈들이 떨어져 내렸다. 낙가산(洛迦山) 눈썹바위 아래 마애관음좌상의 미소는 봄햇살을 닮아가고 있었다.&#13;
&#13;
대웅보전 앞마당은 온통 연등의 바다. 형형색색 연등의 물결 위로 카키빛 바다가 출렁거렸다. 바다 위로 둥둥 떠다니는 봄햇살의 조각들에 눈이 감겼다. 하늘과 바다의 경계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봄은 그렇듯 눈부신 빛깔로 세상을 뒤덮고 있었다.&#13;
&#13;
강화 석모도의 '보문사'에서 '팔만대장경'의 흔적을 발견한 때는 지난 2015년이다. 당시 오용섭 인천대학교 문헌정보학과 교수는 &lt;동문선&gt;(東文選)과 중국 &lt;사고전서&gt;(四庫全書)에서 팔만대장경 판각과 보관의 총 본산이 강화도라는 사실을 찾아냈다. 진주 용봉산 영암사를 중창한 뒤 누락된 대장경을 보충하기 위해 강화도에 있는 대장경으로 보충했다, 팔만대장경 인본을 강화 삼산면 석모도 보문사에 보관했다는 &lt;동문선&gt; '영봉산 용암사 중창기'와 &lt;사고전서&gt;의 '고려국대장이안기'의 내용을 보여줬다. 오 교수가 밝혀낸 사료들은 팔만대장경이 강화도를 중심으로 만들어지고, 보관했었다는 피하지 못 할 증거였다.&#13;
&#13;
팔만대장경 말고도, 강화도는 인류의 문명을 혁명적으로 앞당긴 인쇄술이 세계 최초로 시작된 곳이다. 흔히 인쇄술과 동의어인 금속활자가 구텐베르크의 &lt;42행성서&gt;(1450)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그보다 200여년 앞선 1234년 강화도에선 &lt;상정고금예문&gt;이 나왔다.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로 펴낸 책이다. 고려는 몽골과의 항전을 위해 1232년 강화도로 천도한 2년 뒤에 &lt;상정고금예문&gt;을 찍어낸다. 고금의 예의를 수집하고 고증해 50권으로 엮은 전례서였다. 이 책은 이규보의 &lt;동국이상국집&gt;에만 기록돼 있을 뿐 아직까지 원본은 발견하지 못 한 상태다.&#13;
&#13;
1236년 고려는 현존하는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의학서인 &lt;향약구급방&gt;을 펴낸다. 누가 썼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는 이 책은 향약으로 질병을 치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향약은 고려, 우리나라에서 생산하는 약재를 가리킨다. 당시 중국에서 수입하는 약은 당재(唐材)라 불렀는데 &lt;향약구급방&gt;이 나온 이유는 외국산 약재들을 우리나라 약재로 대체하기 위함이었다.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우리나라 약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성과도 거뒀다. 주목할 만한 것은 이 책의 발간 이후 고려 국왕의 수명이 크게 늘었다는 사실이다. 고려 초기 국왕의 평균수명은 42.3세였으나 후대에 갈수록 수명이 늘어난다. 무신정권기(1170~1270)를 기준으로 볼 때, 고려 국왕의 평균수명은 전과 후가 39.3세와 49.79세로 각각 10년 정도 차이가 나타난다. &lt;향약구급방&gt;은 또한 급성 질병에 대해 백성들이 쉽게 구할 수 있는 약재로 치료하는 방법을 쉬운 말로 표기했다는 점에서 13세기 국어연구에 귀중한 사료가 되고 있기도 하다.&#13;
&#13;
고려는 이어 1239년 역시 금속활자로 찍어낸 &lt;남명천화상송증도가&gt;를 펴낸다. '증도가자'란 금속활자로 인쇄한 책이었다.&#13;
&#13;
금속활자보다 먼저 나온 것이 목판인쇄술이다. 강화의 고려정부는 1236년 세계 최고의 목판인쇄술인 '팔만대장경' 판각을 시작해 1251년 8만여 장의 대장경을 완성한다. 팔만대장경은 강화도의 '대장도감'에 판각을 지휘했으며 완성된 이후 1398년까지 강화도 '대장경판당'에 보관했다. 보문사에 팔만대장경 인본 3질이 보관돼 있었다는 기록을 볼 때, 대장경판당에서 가까운 곳에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대장경판당이 어디였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다만 &lt;고려사&gt;는 '서문 밖 대장경판당에 보관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그 서문이 내성 서문을 말하는 것인지, 중성 서문을 말하는 것인지 정확히 밝혀진 게 없다. 현재까지는 국화리 어디쯤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용장사'라는 추정도 있다. 팔만대장경 미스테리에 대한 학계의 연구가 시급한 이유이다.&#13;
&#13;
대장경은 부처님의 말씀을 담은 경장(經藏), 그것을 해설하고 내용을 보완한 논장(論藏), 수행자의 계율을 담은 율장(律藏)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팔만대장경의 위대성은 불교와 관련된 경전을 전부 모은 불교지식의 총체에 인쇄술이라는 하이테크가 결합했다는 사실에 있다. 박종기 국민대 사학과 명예교수는 "강도 시기 고려 인쇄술은 동아시아 최고 수준이었다"며 "대장경을 '5000만 자의 하이테크'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불교 지식에 대한 깊은 이해와 인쇄술이라는 최첨단 기술이 결합됐기에 대장경은 완성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스마트폰처럼 인문정신과 첨단기술의 결합이 바로 대장경의 완성이었다는 얘기다. 인터넷에 앞선 제1의 정보혁명이 바로 인쇄술이고, 인쇄술을 주도한 '인쇄술의 성지'가 바로 강화도였던 것이다.&#13;
&#13;
보문사를 빠져나 오는데 차창 위로 꽃잎이 떨어져 앉았다. 봄바람에 날리는 저 연분홍 꽃잎들은 혹시 고려인들의 영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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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Date>Mon, 16 Apr 2018 00:00:00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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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date>2018-04-16T00:00:00Z</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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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팔만대장경·외규장각 의궤 등 ‘기록문화 성지’</title>
<link>http://117.16.248.84:8080/xmlui/handle/123456789/969</link>
<description>팔만대장경·외규장각 의궤 등 ‘기록문화 성지’
오, 용섭
토론회 주제발표를 맡은 오용섭 인천대학교 문헌정보학과 교수는 “인천 강화는 초기 대장경의 판각을 주도했을 뿐만 아니라 경판과 인본의 봉안지였다.&#13;
&#13;
인천 강화야말로 ‘팔만대장경’의 성지(聖地)라고 일컬을 수 있다”면서 “앞으로 인천 지역의 기록문화를 홍보할 수 있는 문화콘텐츠를 구축하고 문화유적 복원사업에 더 큰 관심과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5 유네스코 세계 책의 수도로 새 출발 한 인천이 세계적인 기록문화의 본고장으로 재조명되고 있다.&#13;
&#13;
23일 ‘세계 책의 수도 인천’ 개막을 맞아 송도컨벤시아에서 인천의 기록문화를 살펴보고 계승 방안을 모색하는 ‘기록문화토론회’가 열렸다.&#13;
&#13;
인천의 강화는 세계기록유산이자 국보 제32호인 ’팔만대장경’의 성지와 같은 곳이다. ‘고려사’, ‘태조정종실록’ 등 역사적 문헌기록을 살펴보면 팔만대장경은 1236년 인천 강화의 대장도감과 경상남도 남해 등지의 분사도감에서 팔만대장경 경판을 새겼고, 1251년 판각이 완성되자 강화의 대장경판당에 봉안됐다.&#13;
&#13;
1398년 강화에서 서우로 잠시 옮겨졌다가 이듬해 합천 해인사에 옮겨 현재까지 전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13;
&#13;
토론회 주제발표를 맡은 오용섭 인천대학교 문헌정보학과 교수는 “인천 강화는 초기 대장경의 판각을 주도했을 뿐만 아니라 경판과 인본의 봉안지였다.&#13;
&#13;
인천 강화야말로 ‘팔만대장경’의 성지(聖地)라고 일컬을 수 있다”면서 “앞으로 인천 지역의 기록문화를 홍보할 수 있는 문화콘텐츠를 구축하고 문화유적 복원사업에 더 큰 관심과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13;
&#13;
또 중앙대학교 송일기 교수는 “당시 중국 등 여러 나라에서 대장경을 판각했지만,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은 고려 고종 때 강화도 등지에서 판각한 팔만대장경이 유일하다”면서 “팔만대장경은 단순히 이민족의 침입을 물리치려고 급조한 문화재가 아니라 역사적으로 축적된 인쇄술과 치밀한 계획이 있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가치를 높이 인정받는 것”이라고 말했다.&#13;
&#13;
세계적인 기록유산으로 평가받는 외규장각 의궤 역시 인천 강화의 유산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옥영정 교수는 “의궤를 ‘기록문화의 꽃’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독창성이나 정교함, 지속성, 예술성 등을 모두 평가한 것”이라며 “의궤는 행사의 내역 일체를 빠짐없이 기록하고 공개해 조선시대의 철저했던 기록정신의 단면을 유감없이 보여준다”고 평했다.&#13;
&#13;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강문식 학예연구사는 “조선시대 강화는 평상 시 경상도와 전라도에서 거둬들인 공물을 서울로 운반하는 수로 교통의 중간기지 역할을 했고 유사시에는 바닷길을 이용해 들어오는 적으로부터 서울을 방어하는 전초기지 역할을 했다”면서 “이 때문에 강화는 일찍부터 국가적으로 중요한 서적들을 안전하게 보전·관리하는 지역으로 인정받았다”고 설명했다.&#13;
&#13;
이어 강 연구사는 “외규장각 의궤는 조선왕조의 국정 운영 실태를 상세하고 입체적으로 기록한 조선시대 핵심적인 국가 기록물”이라며 “앞으로 외규장각 의궤를 더욱 안전하고 철저하게 보전·관리하는 것은 물론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밝혀 나가는 것이 우리와 인천에 주어진 과제”라고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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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Date>Thu, 23 Apr 2015 00:00:00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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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date>2015-04-23T00:00:00Z</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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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m>
<title>[맛따라 길따라] 봄냉이처럼 향긋한 부처님의 미소란 …</title>
<link>http://117.16.248.84:8080/xmlui/handle/123456789/967</link>
<description>[맛따라 길따라] 봄냉이처럼 향긋한 부처님의 미소란 …
오, 용섭
인천대학교 문헌정보학과 오용섭 교수가 찾아낸 '1300년대 초 보문사에 팔만대장경 인본 3질이 있었다'는 기록은 중국 최대 총서인 &lt;사고전서&gt;(四庫全書)의 '천하동문'편 '고려국대장이안기'에서 발견됐다.
&lt;1&gt; 강화 석모도 보문사와 '전망좋은 집'&gt;&#13;
인천일보가 '이야기'와 '맛'이 있는 인천·경기 답사인 '맛 따라, 길 따라'를 오늘부터 매주 연재합니다. '맛 따라, 길 따라'는 기자들이 독자들과 함께 인천·경기의 아름다운 여행지와 맛 있는 집을 찾아 떠나는 즐거운 여행길입니다. 특히 단순한 여행지 소개보다는 현재와 과거, 역사와 풍광을 넘나드는 구성으로 독자 여러분의 까다로운 입맛을 만족시킬 것입니다. 많은 성원 바랍니다. /편집자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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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깊은 사찰 … 마애관음좌상·석굴법당 등 볼거리 풍성&#13;
절 앞 식당 '전망좋은 집' 기름진 쌀밥·꽃게탕 인기만점&#13;
&#13;
아무리 생각해 봐도 635년(신라 선덕여왕4)에 창건한 석모도 '보문사'에 '팔만대장경' 관련한 흔적이 없다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바로 옆 강화도에 팔만대장경 판각을 주도한 '대장도감'(大藏都監)이 있었고, 이를 150년 간 보관한 '대장경판당'이 존재했다면 보문사에도 당연히 팔만대장경과 관련한 역사적 사실이 존재해야 했다. 팔만대장경 취재 5년 차가 다 돼 갔지만 보문사와의 연관성은 100년 묵은 산삼을 발견하는 것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인천대학교 문헌정보학과 오용섭 교수가 찾아낸 '1300년대 초 보문사에 팔만대장경 인본 3질이 있었다'는 기록은 중국 최대 총서인 &lt;사고전서&gt;(四庫全書)의 '천하동문'편 '고려국대장이안기'에서 발견됐다. '고려국대장이안기'에 기록된 보문사의 팔만대장경 이야기는 이렇다.&#13;
&#13;
1304년(대덕8년 갑진년) 중국 남쪽에 '철산'이란 선종 계통 승려가 있었다. 이 철산화상이 고려에 와 부처님 말씀을 설파했는데 그가 발 닿는 곳마다 고려의 백성들이 몰려들었다. 그렇게 1, 2년 뒤 고국으로 돌아갈 때가 된 철산화상이 보문사를 찾았다. 그런데 여기서 대장경인본 3질을 보게 된다. 철산화상은 "대장경 3질이 무슨 인연으로 보문사에 있는 것이냐"고 관심을 보였고 그러잖아도 선물을 주려했던 고려의 관리들이 1질을 주자 기뻐하며 돌아갔다. 3질의 대장경인본 가운데 2질은 옛날의 임금과 신하가 안치한 것이고, 1질은 당시 봉익대부 지밀직사사 군부판서 상호군인 허평과 서원군 부인인 염씨 요인이 바친 것이었다. 철산화상은 그 중 허평 부부가 봉안한 대장경 인본을 가져갔다.&#13;
&#13;
이 '기록의 발견'은 팔만대장경과 연관한 보문사의 역사를 최초로 밝혀냈다는 의미도 있지만, 팔만대장경이 인천 강화도의 것임을 재확인하는 중요한 증거라 할 수 있다.&#13;
&#13;
▲삼별초, 팔만대장경의 외포리&#13;
보문사에 들어가기 위해선 '외포리선착장'에서 '삼보해운'이 운행하는 배를 타야 한다. 안개만 끼지 않는다면 아침 일찍부터 오후 7시까지 30분 간격으로 운행하므로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강화대교를 건너 15분쯤 달렸을까. 외포리선착장에 닿았을 때 갈매기떼가 선착장의 하늘을 맴돌고 있었다. 지금 외포리는 전국 최고 품질인 '강화새우젓'을 파는 수산시장이 들어서 있지만 745년 전, 고려 무신정권의 최정예부대인 '삼별초'가 권토중래를 선언하며 떠나간 곳이었다. 1270년 고려가 개경으로의 환도를 결정하자 삼별초는 반란을 일으킨다. "우리야말로 고려의 정통성을 이어받은 고려인으로 몽골과 끝까지 항전할 것이다." 그렇게 외포리를 떠난 삼별초는 진도, 제주도로 후퇴하며 3년 간 저항하다 1273년 여·몽연합군에 의해 전멸한다. 그러나 실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일본 오키나와에서 계유년고려와장조(癸酉年高麗瓦匠造) 명문와(銘文瓦)'란 글자가 새겨진 기와가 출토된 것이다. 계유년은 삼별초가 멸망한 1273년인데 오키나와에서 고려의 기와가 발견됐다면 제주에서 패퇴한 삼별초군이 오키나와로 건너갔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외포리선착장은 1398년까지 강화도 대장경판당에 보관하던 팔만대장경 이운을 시작한 곳이기도 하다. 팔만대장경은 외포리선착장을 떠나 서울 용산강으로 갔다가 지금의 합천 해인사로 이운된다.&#13;
&#13;
석모도나 보문사로 들어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차를 탄 채로 배에 오르고 10분 안에 배에서 빠져 나온다. 차 안에 있는데도 갈매기들의 울음소리가 크게 들려온다. 갈매기들은 움직이는 배를 끈질기게 따라붙으며 먹이를 달라고 끼룩거린다. 인간의 문명 혹은 문화에 맞춰 생존방식을 바꿔야 하는 동물들의 삶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 걸까. 야생의 파괴는 생태계의 교란, 먹이사슬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인간과 동물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편하고 감상적으로 생각하기로 한다. '외포항을 떠나지 않는 저 새들은 어쩌면, 외포리를 떠났던 삼별초군이 환생한 것은 아닐까.'&#13;
&#13;
배를 탄 지 몇 분 지나지 않아 '석모도선착장'에 닿는다. 하선하여 7, 8분쯤 운전을 하며 도로를 따라가다보니 둥글넙적한 바위산을 등지고 있는 사찰이 나타났다. 보문사다. 양양 낙산사, 남해 금산 보리암과 함께 우리나라 3대 해상 관음 기도도량인 보문사는 외형적으로도 수려한 절이다. 낙가산 중턱의 눈썹바위 아래 비스듬한 바위면에 새겨진 '마애관음좌상', 22나한상이 모셔진 '석굴법당', 백옥으로 만든 '오백나한상', 너비 13.5m에 높이 2m의 초거대 부처님인 '와불전'. 보문사는 그 역사만큼이나 볼거리가 많은 사찰이다. 이 중에서도 특히 마애관음좌상은 보문사를 상징하는 중요한 아이콘이다.&#13;
&#13;
▲배선주 주지 스님 일가의 삶&#13;
마애관음좌상은 1928년 당시 보문사 주지 배선주 스님이 금강산 표훈사 이화응 선사와 함께 새긴 좌불상이다. 그냥 봐서는 그리 크게 보이지 않지만 높이 920㎝, 너비 330m나 되는 거상이다. 이 석불에 관한 이야기를 유일하게 아는 사람은 배선주 스님의 첫째 아들인 배정만(85) 옹이다. 강화군의원으로 3선을 지낸 그는 현재 보문사 입구 식당인 '전망좋은 집'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13;
&#13;
"어머니가 그러는데 아버지가 맨날 눈썹바위에 올라가셔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그러셨다는 거예요. 그러던 어느 날 화응 선사와 함께 바위에 부처님을 새기기 시작하셔서 3년 만에 완성했지요. 그 때는 전기도 없고 아무 것도 없잖아요. 오직 석공의 손으로만 새긴건데, 그 석공의 손자가 아직 석모도에 살아요. 구름 운자 운씨 집안이지요."&#13;
&#13;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출생인 배선주 스님은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16살 때 전등사에 들어가 머리를 깎는다. 이후 의정부 원통암으로 간 스님은 35살 되던 해 보문사 주지로 부임한다.&#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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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원통암 뒤 바위에서 일주일을 죽어라 기도를 했는데 기도가 끝나는 날 웬 동자승이 나타나 열쇠와 자물쇠를 주더랍니다. 깨보니까 꿈이거든. 당시 보문사는 전등사 말사였는데, 그러니까 인사권이 있던 전등사에서 큰스님이 저희 아버님한테 "너 보문사 주지로 가라" 해서 이리 오셨다는 겁니다."&#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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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선주 스님은 목소리가 좋고 염불에 뛰어난 승려였다. 조용하던 보문사는 신도들로 넘쳐났고, 그 가운데 배 옹의 어머니도 있었다.&#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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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36살이고 어머니가 21살인데 결혼을 했죠. 비구에서 대처승으로 돌아선 거지. 그 해 나를 낳고 내 밑으로 남동생 둘, 여동생 둘을 낳은 뒤 내가 11살 때 49세의 나이로 돌아가셨어요."&#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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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옹의 형제들은 모두 생존해 있으며 여동생 한 명은 비구니로 부처님을 모시고 있다. 일제강점기에도 6·25전쟁 기간에도 배 옹과 가족들은 보문사를 떠나지 않는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섬에 있던 스님들조차 배를 타고 남쪽으로 떠났는데도 말이다. 그 때 홀로 보문사를 지킨 사람이 바로 배 옹의 어머니인 고 김암전 여사다.&#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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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3년 동안 아무도 없으니까 어머니 혼자서 보문사를 지키며 관리를 하셨지. 인민군은 안 들어왔는데 인천상륙작전 때 도망가던 인민군들이 잠깐 들어와 20일 정도 있었던 것 같아요. 인민군들이 들어와서 학살하거나 그런 건 없었는데 태극기를 갖고 있던 사람 한 명을 죽였어. 그리고는 후퇴하느라 바빠서 여기저기에 따발총만 실컷 쏘고 지나갔지."&#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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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끝난 뒤 보문사는 다시 평화를 되찾았고, 이후 60여년을 고요하면서 도도하게 흘러왔다.&#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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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문사를 찾는 사람들이 무심코 들어가는 식당이 보문사 입구 '전망좋은 집'(032-932-3137)이다. 이 식당은 다름아닌 배정만 옹이 운영하는 식당이다. 기름진 석모도 쌀밥과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꽃게탕이다. 여기에 벤댕이회무침과 구이, 해물파전, 게장정식, 산채비빔밥도 맛이 뛰어나다. '전망좋은 집'에서 꽃게다리 한 두개가 들어간 '된장찌개백반'을 먹고 나오는데 행상을 차려놓은 백발의 할머니와 눈이 마주친다. 목도리를 두른 채 눈만 빼꼼이 내놓은 할머니가 기자에게 아무 말 없이 땅콩 두 세알을 집어 내민다. 기자가 머뭇거리자 할머니는 '안 사도 좋으니 맛이나 보라'는 표정으로 땅콩알 든 손을 흔든다. 석모도, 보문사엔 그렇게 섬사람들의 오래된 삶과, 자애로운 표정으로 그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부처님의 미소가 공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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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Date>Tue, 24 Mar 2015 00:00:00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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