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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노동운동가에 대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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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1970년대 (생산시기를 기준으로)</description>
<pubDate>Fri, 22 May 2026 06:12:56 GMT</pubDate>
<dc:date>2026-05-22T06:12:56Z</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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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世界(세계적) (우수)- 모범 (조합) ...... (노동) 운동은 「獨立(독립) 운동」</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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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世界(세계적) (우수)- 모범 (조합) ...... (노동) 운동은 「獨立(독립) 운동」
世界(세계적) (우수)- 모범 (조합) ...... (노동) 운동은 「獨立(독립) 운동」(김) 重(중) (열) 씨 | 山&#13;
(원산노동연합회)는 국내뿐 아니라 1920년대 후반기의 국제정 | 세로 보더라도 세계적으로 우수한 모범적 노동조합기구였다.&#13;
그럴만한 ( 법적 뒷받침도없던 그당시에 자율적으로 보기드물게 조직적이 | 며 건설적인 노동운동을 전개했었다. | 山(원산)의 노동자들은 21년 勞動會(노동회)가 결성된 후 70여회의 투쟁을 통 해 노동조합으로부터 커다란 경제적 사회적 혜택을 받았었다. 元山 (원산도 련)이 그처럼 잘 운용된것은 첫째로 지도자들의 지도력에 의한 것이었다고본다. 당시의 노동조합 간부는 순전한 노동자보다도社會(사회)의 유력한 지도급인사 들아 많았다. 그리고 노동운동은 곧 독립운동으로 연결되었던 것이다. 植(김 경식) 위원장을 비롯한 李永(이영노 한기수등 쟁쟁한 인사들이 노동운동을 | 이끌었고, 노동자들은 조합을 전적으로 신뢰했으며, 노동조합원 상호간의 인간적 | 인 유대도 매우 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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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Date>Tue, 08 May 1973 00:00:00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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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전국勤勞者(근로자)들 默念(묵념)속에 故(고) 錢鎭漢(전진한)씨 社會葬(사회장)</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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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전국勤勞者(근로자)들 默念(묵념)속에 故(고) 錢鎭漢(전진한)씨 社會葬(사회장)
전국 (근로자)를 (묵념) 속에 (고) 鎭漢(전진한씨 社會葬(사회장)&#13;
| (우촌) 鎭漢(전진한) 선생 사회장이 24일 상오 10시 시민회관에서나(백 두진) 국회의장 太完善(태 완전 부총리 申植(신직수 법무장관 相浩(배상호) 노총위원장을 비롯 유족들이 참석한가운데 불교의식으로 엄수되었다.&#13;
| 전국의 근로자들은 이날상모 10시 1분간 묵념, 노동운등에 일생을바친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13;
| 백두진) 장례위원장은 조사에서 "일생을 겨레와 노동자들을 위해 몸바쳐 일한 (우촌)선생은 이땅에 노동운동의참뜻심은 분이며 노동을 상품처럼 보 는 좌익 사상에 맞서 노동이야말로 신성한정신의 소산이라고 강조, 해방후 노동자 를 적화운동의 발판으로 삼으려던 공산주의자들의책동을막아 투쟁하신 분이다" 고 고인을기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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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Date>Mon, 24 Apr 1972 00:00:00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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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date>1972-04-24T00:00:00Z</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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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첫 女子勞組(여자노조)지부장탄생</title>
<link>http://117.16.248.84:8080/xmlui/handle/123456789/431</link>
<description>첫 女子勞組(여자노조)지부장탄생
첫 女子勞組여자노조지부장탄생 釜山(부산)피복 保加工(보세 가공)지부&#13;
| ---전국연합노조 부산피복보세 가공지부 대의원들은 7일상모 부산노동회관에 서대의원총회를 열고 李順子(이순자씨 (사진50·부산시 중구 동광동 5716)를 지 부장으로 선출. 이씨는 한국 노동운동사상 최초의 여자 지부장이 됐다.&#13;
----부산의 피복보세 가공업계에 종사하는 4천 12명 (여자 3천 6백명의 노조원을 이끌어갈 李(이씨는 이날 63명의 대의원중 61명의 압도적 지지를 얻어 지부장 이 된것.&#13;
----이여사는 피복보세가공업체인 D 산업에 입사한 후 끈질긴 투쟁을 벌며 D산업의 노조결성에 성공하는 등 여성노동조합운동에선구자적인 역할을 해왔 는데 "여성 근로자의 지위및 복지향상에 최선을다하겠다"고 당선소감을 밝혔다. | 釜山(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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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Date>Mon, 08 May 1972 00:00:00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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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劳動運動(노동운동)의 先覺者(선각자)</title>
<link>http://117.16.248.84:8080/xmlui/handle/123456789/429</link>
<description>劳動運動(노동운동)의 先覺者(선각자)
動運動(노동운동의 先覺者(선각자) 錢鎭漢先生(전진한선생)을 애도)함 배상호) 「 (노동자) 로나았다가 勞動者(노동자)로 가노라」는 유언을 남긴채 70 平生(평생)를 이나라와우리 노동자를 위해 싸워 모신 빛나는 투쟁)에 ( | 막)을 내리고 고요히 눈을감으신 우리 노동계의 先驅者(선구자)이시며 巨星(거 성)이신 鎭漢先生(전진한선생 ! 하지 않은 先生(선생과의 유명 )의 감림 길에서게된 우리 (노동계)의 슬픔은 말할것도 없고 어버이를 잃은 허전 함을달랠길 없어 하는 4백만노동자의 한숨어린 애도)가 지금 이山강 | 산)에 고요히 물결치고있다. 先生(선생께서는 일찌기 (경북) 聞慶(문경) 이 -寒村(일한촌)에 태어나시어 苦學(고학)과學生(장학생으로 日本(일본) | 田大學經濟(조도전대학경제과)를 卒業(졸업)하신 () 農運動(노농 운동)과 抗日(항일투쟁)으로 피 신의 주감옥)에서 2年間(연간 옥고)를 치르시었고 (해방후)에는 노동운동)과 靑年運動(청년 운동)에 投身(투신), 大韓勞動 (대한노동총연맹)(大韓 대한노총) 員長(위원장)으로서 反共自由勞動線(반공자유노동전선)의 ( 수)로 | 活 활약하심으로써 建國(건국)과 發展(노동운동발전)에 크게 공헌하신것은 萬人(인)이 다아는 事實(사실)이다. 특히 자유세계노동자의 대표적인 集結집결체)인 自由 (국제 | 자유노련(ICFTU) 創立(창립)에 (참 하시어 理事(이사)로 被(피선), 활동하심으로써 이나라 ▼團 노동단체)의 국제활등의 기반을 구축하신것은 너무나 기억에 새로운일이며 한편 국내적으로는 初代社會長官(초대사 회부장관)으로서, 또한 制憲國會議員(제헌국회의원)을 비롯하여 2.3.5.6代國會 | 議員(대국회의원)으로서 勞動者(노동자)를 위하여 입법), 行政(행정면) 에서 많은일을 하셨고 그후에도政(정계)의 重鎭(중진)이며 元(원로)로서 이나라 노동자의 권익신장을 위해 끊임없이 勢力(노력)을 다해 오심으로써 政府 (정부)로부터 國 章(국민훈장) 無窮花(무궁화장) (수서)하셨다. 선생은 항상 重厚(중) 원만한 品(성품)과 근검절약 條 (신조)로 正義(정의)를 숭상하며 (약자)를 도와 自己(자기 희생을 아끼지 않는 불굴의 指導(지도이념) 으로 넘쳐있었고 官(관직)에 계 실때나 議員(의원 생활시대를 통하여 그民서민적인 기풍)은 「動 | 長官(노동장관)」 「막걸리 長官(관)」의 별명을 들을정도로 그야말로 노동자 의 가장親(친근한 어버이였으며 흠모의 對象대상) 이었다. 이제 인자하신 그 모습 (호쾌)하신 그웃음. (영원히 사라지시고 우리를아끼고 돌보아주시던 巨星(거성)이 땅에 떨어지고 말았으니 (약)하고 能(능력) 없는 우리들은 누구를 의지하여 싸워야 한단말인가? | 그동안 先生(선생 )이 땀흘려 뿌리신 씨앗, 눈물로 북돋우신 가지마다에는 이제 民主민주노동)」의 찬란한 꽃이 피려하건만 피는 꽃을 등지고 열매를 보 | 시기도前(전)에 홀연히 떠나가시니 先生(선생)의 뒤를 이어不足(부족한 이 몸 | 을 채찍질하며 先生(선생)이 뿌리신 거룩한 그 씨앗이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하 고자애쓰던 보람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듯한느낌이다. | 그러나 한편 先生(선생)은 가시었으나 남아있는 우리의 先輩(선배),同(동료), | 後(후배)들이先生(선생)의 거룩하신 뜻을 받들어 先生(선생)이 못다하고 가신 | 民主運動(민주노동운동)의 發展(발전)과 祖國(조국)의 民主的一課業( 민주적 통일과업)을 끝까지 成就(성취시킬 것을 우리모두가 맹서하는 동시에 先生(선생)의 따뜻한 얼이 항상 우리를 돕는 힘이 되어주실것을 마음깊이 기대 하면서 삼가 명복을 비는바이다. [韓國經委員長(한국노총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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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Date>Thu, 01 Jun 1972 00:00:00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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